얄개들의 데뷔 앨범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그 앨범 이름부터가 매혹적입니다. 그래, 무언가를 하자는 말들과 주장은 많지만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말하는 사람들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특히 청춘은 늘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것처럼 보입니다. 다들 꿈을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실천을 해야한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하면 누구도 그를 가만 두지 않습니다.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시간도 필요한 데 말이죠.
첫번째 곡인 '청춘 만만세'에서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얘기합니다. "너는 새로운 시작이라 했고 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면서요. 이 대목에서 저는 조금은 통쾌했습니다. 세상을 낙천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세상 모든 것에 늘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지치는 일이니까요. 때로는 무심하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이니까요.
청춘 만만세
눈이 마주치고 말을 걸어봤지 너는 새로운 시작이라 했고 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 아스팔트 위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 우린 토끼처럼 오손도손 방안에서 창 밖의 아이들처럼 저 하늘을 가득 덮어버린 먹구름을 하나씩 걷어내 보자
'화창한 날에'라는 곡 역시 비슷한 감성으로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혼자인데, 날이 화창하든 오늘이 무슨 날이든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날이 다 그날 같고, 날씨는 좋아도 우울하고, 안 좋아도 우울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데 말이죠.
화창한 날에
날씨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늘 이런데 우울한, 우울한 날 뿐인데 날짜가 가고 가서 몇 년이 가도 날씨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젠 나를 찾지 않는 너의 노랠 들어보아도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을 봐 이렇게 비참해진 안쓰러운 모습으로 넌 어쩔 수 있니 넌 웃을 수 있니
날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일기는 언제나 같은 말 뿐인데 날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이 내일이고 어제가 오늘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얄개들의 이번 앨범들이 허무주의에 무기력한 내용들인 건 아닙니다. 단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매일 매일이 우울해도 괜찮다고, 그건 너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그런 공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니까요. 뒤처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못난 것도 아니니까요.
얄개들의 이번 앨범을 들으며 힘들 떈, 지칠 땐, 우울할 땐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 되뇌어 봅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헬프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1963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 잭슨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백인 가정들에는 모두 흑인 가정부가 있습니다. 그 백인들은 인종을 차별하고, 흑인을 더러운 존재, 불결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게 대부분입니다.
흑인 가정부와 함께 화장실을 쓰는 게 더럽고 불결하다며, 일부러 돈을 들여서 집 바깥에 가정부용 화장실을 만들고, 가정부의 식기는 따로 보관돼 있어야 하고, 말대꾸도 해서는 안 되죠. 심지어는 폭풍이 부는 날에도 바깥 화장실을 쓰라고 하는 백인 주인, 가정부 미니는 그냥 집안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고 결국 해고를 당합니다. 2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그 폭풍 속에서도 말이죠.
가정부들은 백인들의 아이를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키우고 뒷바라지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없습니다. 그들도 자라나 어느새 지금은 주인들이 그러하듯이 그들을 내려다보죠.
스키터의 친구들은 모두 돈 많은 남자들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일을 하고 싶습니다. 기자가 되거나 소설가가 되고 싶죠. 그녀는 그래서 가정부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이야기,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인격 모독을 당했던 이야기 등을 하려고 하죠. 지금이야 쉬워 보이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목숨을 걸고 해야했던 일이었습니다. 백인에게도 흑인에게도 모두 위험한 일이었죠.
처음에는 에이빌린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인 미니도 함께 이야기를 들려주죠. 그리고 길거리에서 죽음을 겪게 된 흑인 살해 사건 이후, 수많은 가정부들이 그녀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그렇게해서 '헬프'라는 책이 탄생하게 되죠. 그리고 이 책이 탄생하기까지의 이 내용들은 모두 실화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인종 차별이라는 꽤 무거운 주제를 골랐지만 영화는 이를 흥미롭고, 유쾌하게 풀어나갑니다. 일상생활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재미들을 잘 버무리면서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영화죠.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묘한 기시감 같은 걸 느꼈습니다.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건 인종 차별, 그로 인한 반인권 등이었지만 인종 문제가 아닌 계급 문제로 치환해도 별 무리없을 영화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얼마전까지 큰 화두였던 무상급식에 대한 논란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부를 가진 사람들이 '나눠주려는' 일종의 희안한 '봉사 정신' 같은 게 닮아 있었습니다.
영화 속 백인 가정들도 함께 생활하는 흑인 가정부에게는 온갖 차별과 모욕을 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못 먹고 가난한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자선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이런 모습은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죠. 그 백인 가정의 행태를 보면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단지 과거, 영화 속 이야기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회의 모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이중성을 엿볼 수 있는 영화 '헬프'를 적극 추천합니다. 일단은 정말 재밌으니까요.
사실상 이 [헬프]라는 작품은 어느 정도 타협의 산물인데, 이야기가 흑인 가정부들 뿐 아니라 그들의 삶에 희망을 가져다주는 '백인' 여성 또한 중심적인 인물로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영화는 그리 기만적이지 않으면서도 균형이 잘 잡혀있고, 인물들에 대한 진솔함으로 가득차 있다. 다소 캐리커쳐처럼 다뤄진 부분도 없지 않지만 전반적으로 개성이 강하고 믿음직스러운 캐릭터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 몰입도 또한 아주 높았다. 전형적인 이야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