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마라도를 향했다.
바람부는 날이 왠지 마라도와 어울리기도 하지만, 계획했던 날이 바람 많이 부는 날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11시 배를 타려고 열심히 모슬포항으로 갔지만 2분전 간신히 도착, 표를 끊고보니 11시가 넘어 있었다. 다행히 배가 기다려줘 헐레벌떡 뛰어 승선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후 험난한 행로에 대해서는 짐작도 못했다.

배가 출발하기 시작하자 출렁이는 물결 때문에 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배멀미란 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지럽고, 속은 울렁거리고... 30분도 채 되지 않는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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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미로 나를 힘들게 한 모슬포-마라도 운항 배.


그나마 배멀미를 참을 수 있었던 건, 배 안의 사회자(?) 덕분이었다. 모슬포항에서 출항해 마라도에 도착할 때까지 재치있는 입담과 노래 솜씨로 심심하고 힘들 수 있는 배 안에서의 시간을 재미있게 해줬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마라도.
마라도는, 참 좋은 곳이었다.

제주도에 1년 넘게 살았지만 마라도는 또 다른 분위기가 있는 곳이었다.
거의 한 눈에 들어오는 섬의 풍경. 어떤 이들은 1시간이면 마라도를 충분히 볼 수 있다고도 했으나 그것은 그저 마라도를 슬쩍 훑어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걸어서 마라도를 걷는다해도 1시간이면 충분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섬 곳곳에 눈길을 돌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면 마라도는 1시간안에 돌아보기엔 너무 넓은 곳이었다.

당초 12시30분 배를 타고 마라도를 나올 예정이었으나 결국 2시30분 배로 마라도를 나왔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더해 꼭 다시 오리라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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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마라도 관광객들의 필수 교통편이 돼버린 골프카.


많은 사람들이 마라도를 방문하면, 골프카를 대여해 섬을 한바퀴 돌고 자장면을 먹고 한 시간만에 마라도를 빠져 나간다. 정 시간이 없다면야 또 마라도 주민들의 경제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무턱대고 말릴 수는 없겠지만 시간이 있다면, 골프카보다는 천천히 걸어보길 권한다.

골프카를 타고 지날 때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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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남단 지역엔 '장군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사람들을 지켜준다고 믿고 이 곳에서 제를 지내기도 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라도의 명물은 자장면이 아니다. '자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광고 때문에 마치 '마라도=자장면'이라는 공식이 성립돼 버렸지만 마라도는 원래 자장면의 본고장이 아니다. 그저 우리나라 최남단에서도 휴대폰이 터진다는 그 상업적인 광고에 마라도의 이미지가 매몰돼 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과거 1개 뿐이던 자장면집은 지금 현재 4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1개가 더 생긴다고 하니 인구 8-90명 마을에 자장면집만 5개인 진풍경이 생겨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서로 경쟁적인 분위기가 되다보니 사이 좋던 주민들의 관계도 소원해져 간다고 한다.

골프카도 처음엔 몇 대 없었지만 마라도를 찾는 사람들이 골프카를 찾다보니, 그 수 역시 슬글슬금 늘어났다. 그런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보니, 이제 자장면 한 그릇을 먹으면 공짜로 골프카를 태워주는 마케팅까지 등장했다. 소비자의 측면에선 자장면 한 대 가격에 골프카까지 얻어 탈 수 있어 경제적이겠지만 그 작은 마을에서도 서로가 경쟁을 일삼으며 살아간다 생각하니 서글픔이 더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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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이와 손잡고 걷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천천히 마라도를 즐기면 얼마나 좋은가.

우리가 좀 더 편하기 위해 버리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해주는 조금은 씁쓸한 풍경이었다.

아무튼 이 작은 마라도에도 학교(분교)가 있고, 축구장이 있고, 편의점이 있고, 절이 있고, 교회가 있고, 성당이 있다는 것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없는 것이 더 많은 곳이지만 없는 것에 대해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마라도에 밀려드는 우리들이, 느린 시간 속의 마라도를 오히려 그 어느 곳보다 빠른 장소로 만들어 버리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애초 마라도엔 골프카 같은 건 없었을 텐데... 자전거도 대여용 자전거가 아닌 건 보지 못했다. 모두 걸어서 생활했을 그 곳에 우리는 골프카를 가져가 걷는 즐거움을 빼앗아버렸다. 골프카를 타고 마라도를 한바퀴 돌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은 대체 무엇일까.

애초 마라도엔 횟집이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그 섬에서 잡은 해산물들을 파는 횟집이 있었으나 이젠 횟집이 거의 장사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빠른 음식인 자장면이 마라도를 대표하는 음식이 돼버렸으니 사람들이 굳이 회를 찾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 아름다운 청정지역이 아니라 한 시간이면 충분히 보고 나올 수 있는 거기다 끼니까지 해결하고 나올 수 있는 그 어느 도시보다 빠른 곳이 돼버렸다.

마라도에 다시 느린 시간을 돌려주는 것, 그건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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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곳곳엔 앉을 수 있는 곳이 많다.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벤치도 있고... 그저 바닥에 앉아도 좋다. 그러나 이렇게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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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7 18:06 2008/04/0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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