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에게 잘 보이기 위해, 상처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때로는 싫어하는 일을 꾹 참고 견디기도 하고, 상처받을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때론 이런 배려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불러오기도 한다. 배려와 진실 사이의 간극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 플로렌스와 에드워드. 신혼 첫날밤, 에드워드는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욕정에 설레이고, 플로렌스는 첫날밤 치러야 하는 거사가 두렵고 불편하기만 하다.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에드워드는 성급하지 않게 일을 치르려하고, 플로렌스는 에드워드가 상처받지 않도록 두려움과 불쾌감을 견디며 그를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플로렌스가 꾹 참고 노력했음에도 에드워드는 일을 치르기도 전에 플로렌스의 배에 정액을 쏟아내고 만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플로렌스는 체실비치로 뛰쳐나가고, 불쾌감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 에드워드 역시 그를 뒤따라가고... 그들은 결국 거기서 파국을 맞는다.
책을 읽으면서 사랑하면 꼭 섹스를 해야하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했고, 섹스에 대한 무지와 부끄러움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일까도 생각해보게 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건, 진실을 감추면 어떤 파국을 맞게 되는가였다.
우리는 때로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나를 보호하기 위한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꼭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할 지라도 많은 것을 감춘 채 살아간다. 그러는 사이 서로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쌓이고, 그것은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체실비치에서 파국을 맞았지만, 내게 체실비치는 가식을 벗고 진실을 터트리는 공간이다. 감추고 속여서 보여주는 아름다움보단 추할 지라도 진실된 모습이 더 아름답다.
그래서 내게 체실비치는 아름다운 곳이다.
p.s 어쩌면 이언 매큐언은 끊임없이 진실과 싸우는 중일 지도 모르겠다. 비록 책으로는 보지 않았으나 이언 매큐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어톤먼트'에서도 감추어진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 세계에 대해선 좀 더 많은 글들을 읽어보고 후에 포스팅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