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칼퇴근이 보장되는 곳. 칼퇴근이란 업무 시간이 됐다고 해서 하던 일까지 내팽개치고 퇴근해 버리는 그런 환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가 더 남았을 때, 처리하지 못한 일이 있었을 때,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야근을 해야할 때는 분명히 있다. 이럴 때도 칼퇴근하는 곳에 다니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야근을 당연시하는 곳에 다니고 싶지 않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 대부분의 노동 현장은 칼퇴근하지 않는 것을 너무 당연시 여긴다.
업무 시간 내에 할 일을 마치고 칼퇴근 하는 사람을 정상적으로 바라보고, 일을 더 시켜야할 때나 야근을 해야할 때 보상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곳에 다니고 싶다.
하나. 직위·나이를 이용해 상하관계를 정하지 않는 곳.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라 생각한다.
직위와 나이로 아랫사람·윗사람을 나누고, 윗사람의 명령에 아랫사람이 무조건 따라야하는 곳엔 다니고 싶지 않다.
나보다 직위가 높고 나이도 많은 사람이 윗사람인 건 맞다. 그러나 윗사람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예의는 아니라 생각한다.
아랫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고, 서로 평등한 위치에서 토론이 가능하고, 아랫사람의 문제제기를 버릇없는 것이라 여기지 않는 그런 곳에 다니고 싶다.
하나. 취업규칙만이라도 잘 지키는 곳.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곳이라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사실 그것이 기본이 돼야하지만, 그것이 정 어렵다고 한다면 취업규칙만이라도 잘 지키는 곳에 다니고 싶다.
취업규칙에는 업무 시간, 휴가, 휴직, 퇴직, 해고 등등의 내용들이 담겨 있다. 연봉 협상시에 취업규칙들을 모두 살펴보는 게 맞지만 실상 취업규칙들은 입사 후 보는 게 보통이다.
어쨌든 취업규칙만 보더라도 불합리한 내용을 적어놓은 곳은 거의 없다. 가령 휴가 일수를 보면 1년 안에 쓸 수 있는 휴가 일수가 나와 있다. 보통 그 휴가는 어느 때나 쓸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실상은 아무 때나 쓸 수 없는 게 휴가이다. 휴가를 낼만한 그럴 듯한 핑계를 만들어 내야하고, 상사의 허락이 필요하다. 주위의 눈치를 봐야하는 것도 물론이다.
근기법 준수가 당연하지만, 백번 양보해 취업규칙만이라도 잘 지킬 수 있는 그런 곳에 다니고 싶다.
하나. 기계적인 수치로 업무 평가를 하지 않는 곳. 연봉제가 도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업무 평가라는 것이 따라왔다. 그 사람의 업무를 평가하고, 그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동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업무를 평가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성과 중심주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성과만으로는 조직이 잘 굴러갈 수 없다. 아무리 세계 1등, 대한민국 1등을 하는 조직이라도 조직 내부가 즐겁지 않으면 그 조직은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업무 평가는 수치로 보여지는 성과 뿐만이 아니라 조직이 즐겁게 굴러가게 하는 데 얼마나 필요한 역할을 했는가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성과는 잘 못내는 노동자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있어 조직이 즐겁다면 그 사람은 조직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왜 수치로 보여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평가를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할까?
숫자로 보이지 않는 것들로도 평가를 진행하는 그런 곳에 다니고 싶다.
하나. 내 노동을 내가 조직할 수 있는 곳. 굳이 프리랜서일 필요도 없다. 짜여진 업무 시간에 맞춰 책상 앞에 앉아있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머리가 안돌아갈 땐 차도 마시고,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머리를 식힐 수도 있다. 몸이 피곤해 미칠 때는 몇 시간이고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보다는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일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성이 높다.
한가지 예를 든 것 뿐이지만 이런 식으로 자기 노동을 자기가 조직할 수 있는, 그런 곳에 다니고 싶다.
내가 일하고 싶은 노동 환경은, 연봉을 많이 주는 곳도 아니고, 복지가 잘돼 있는 곳도 아니다. 노동자가 '근로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일할 수 있는 환경, 제대로 평가 받고, 제대로 보상 받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당연시하게 여겨왔던 각종 문제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정말 최고의 노동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더 좋은 환경이란 어떤 것일지 끊임없이 꿈꿔야 좋은 노동 환경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