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를 찾아 떠난 여행을 떠난 내가 아비뇽에 불시착했다.

사실 아비뇽은 경유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하루를 묵게 된 것이다.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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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 베네제 다리', 동요 '아비뇽의 다리 위에서'의 무대가 된 곳이라고 한다. 끊어져서인지 파란 하늘과 파란 강물 때문인지 쓸쓸해 보인다.


원래 나의 목적지는 아를이었다.

파리에서 아를로 가기 위해서는 아비뇽을 거쳐서 그곳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가야 한다.

아비뇽에서 아를은 20분이 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

하지만 TGV를 타고 가면 아비뇽 TGV역에 내리기 때문에 일반 기차역으로 이동한 뒤 기차를 타야 한다.

많은 여행객들이 경유하는 곳이므로 아비뇽에 가면 당연히 기차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비뇽에서 아를로 가는 기차 시간을 알아보지 않았단 얘기다.

그런데 웬 걸. 아비뇽으로 출발하기 전에 혹시나 하여 타임 테이블을 봤더니 내가 아비뇽에 도착하는 시간에는 아를행 기차가 없었다. 이건 그야말로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마시던 맥주가 확 깨는 순간이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안절부절 못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여행 중 만나는 뜻하지 않은 난관도 역시 여행자가 겪어야 할 몫이다. 아비뇽은 여행객들이 많은 곳이니 호텔 하나쯤은 있겠지 싶어 걱정을 덜어두기로 했다.

드디어 도착한 아비뇽. 아비뇽은 어두웠다. 유럽의 백야를 고려했을 때, 이 어둡다라는 건 상당히 늦은 시간을 의미한다.

아비뇽 시내로 나와 호텔을 찾아다니는데, 길거리에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았다. 이것도 보통의 유럽의 밤풍경과는 다른 모습. 왜 그럴까 했더니 하필 그날이 아비뇽 연극 페스티벌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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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연극 페스티벌엔 한국팀도 참가했다, '어미'


길 가 노천 카페에는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떠들썩하게 그 밤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몸은 몸대로 지쳐 있었고, 숙소도 없어 마음이 불안한 상태.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놀고 있으니 마음은 더 불안했다. 허름한 한 호텔을 발견해 들어가니 방이 없단다. 길을 더 걷다가 다른 호텔에도 들어갔는데 역시 빈 방이 없었다. 순간 머릿속엔 온갖 생각들이 교차했다. 노숙을 해야하나, 저기 경찰이 있는데 경찰서에서 재워달라고 할까, 한국 사람들을 찾아서 하룻밤 재워달라고 할까 등등.

호텔 한군데만 더 가보자 하고, 역 바로 옆에 있는 ibis 호텔로 향했다. 들어갔더니 직원은 통화를 하면서 한 사람의 체크인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 사람의 체크인이 끝났는 데도 내겐 신경도 안쓰고 계속 통화 중이다. '이거 방이 없기 때문인 걸까', 방이 없다고 하면 사정해서 로비에서 묵게 해달라고 해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 통화가 끝나 방이 있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있다고 한다. 순간 모든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하룻밤 10만원이 넘는 거금이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결제를 했다.

방에 들어가니 이제껏 내가 지낸 호텔 중 가장 깔끔하고 넓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하루 정도는 호강하면서 재충전하고, 남은 여행을 잘하자고 마음 먹었다.

욕조에 물을 받고, 아이팟터치로 음악을 틀고, 이곳으로 오기 전 파리의 한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와인을 꺼냈다. 아, 스크류가 없다. 부랴부랴 로비로 내려가 와인을 따 달라고 했다. 짜증 하나 없이 웃으며 따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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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욕조에 우아하게 몸을 담근채 와인을 마시는 여행 중 최고의 호사로운 휴식이었다.

간만에 잠을 푹 자고, 이왕 이곳에 왔으니 아비뇽을 둘러보기로 했다. 다행히 아비뇽에도 고흐의 그림 한 점이 있었다. 앙글라동 미술관에 있는 '객차'가 그 것. 앙글라동 미술관은 오후에 문을 여는 곳이라 오전에는 아비뇽을 돌아 다녔다.

일전에 포스팅한 것처럼 아비뇽의 골목길들에 반해 목적도 없이 골목길만 헤매고 다녔다. 그렇게 돌아다니다보니 아비뇽 교황청도, 아비뇽의 다리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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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유수'로 로마로 가지 못한 교황이 생활하게된 아비뇽 구 교황청.


구 교황청은 비록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지만 끊어진 쌩 베네제 다리는 무언가 스잔했다. 무언가가 끊어진다라는 건 '이별'을 떠오르게 하고, 그래서 슬프다. 쌩 베네제 다리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는데, 론 강의 범람으로 유실됐다고 한다. 구 교황청과 더불어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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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들라동 미술관이 문을 열기도 전부터 문 앞에서 개장만을 기다렸다. 그림을 빨리 보고, 아를행 기차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가정집으로도 쓰이기 때문에 오후가 돼야 문을 연다고 한다.

소장품만으로도 미술관이 될 수 있으니 굉장한 수집가이다. 아니 어쩌면 예술가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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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그림 '객차'. 개인적으로 기차를 참 좋아한다. 여행의 묘미는 '기차'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 그건 아마도 어릴 적 기억과도 관련 깊은 것 같다. 어렸을 때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여행가는 길은 언제나 신났었다. 그 소란스러움과 더불어 기차 안에서 사 먹는 간식의 맛. 지금도 자동차를 타고 떠난 여행보다는 기차를 타고 떠난 여행이 여행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그림은 그런 설레임보다는 쓸씀함이 묻어난다.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의 마음이랄까? 아니, 기차가 멀리 있는 걸 보니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떠난 마음일까. 그림이 참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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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들라동 미술관에는 고흐의 그림 외에도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세잔 등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피카소는 사진들도 많았는데, 그 중 마음에 들었던 사진. 저 사진은 왠지 빠삐용이 생각난다.

비록 내 실수로 아비뇽에 불시착했지만, 아비뇽에서의 하룻밤은 위기 속에서 건진 뜻밖의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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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3 16:42 2009/08/1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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