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어머니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예비군 중대 정도에서 걸려온 전화 같았다. 통화의 내용은 내 동생이 어디 있느냐는 것, 언제까지 연락이 됐느냐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랬다. 내 동생이 집을 나간 것도 2년이 넘었다. 연락이 닿질 않고, 어디 있는 지도 모르니 동생이 성인이라 할지라도 '가출'을 한 셈이다. 그동안 동생은 예비군 훈련도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같은 전화를 받은 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우리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신다. 술을 즐기기도 하시지만 어떤 때는 술이 아버지를 마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괴로워서, 힘들어서 마시던 술이 습관처럼 돼버린 것이다. 즐거우셔서 술을 마신 날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다 만취해 들어오시는 날이면 어김 없이 동생 이야기를 꺼내신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찾을 방법은 없는지 물으신다. 내가 드릴 수 있는 말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동생의 가출로 인한 부모님의 근심은 동생만의 잘못이라기보단 내가 공범이다. 동생이 집을 나가기 전, 내가 동생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누나가 됐더라면 동생은 마음을 다잡았는지도 모른다.
재작년 아버지는 환갑을 맞으셨다. 무엇보다 나는 동생과 함께 아버지의 환갑을 축하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동생은 연락하지 않았고, 나는 동생의 연락처를 몰랐다. 부모님의 생신이나 명절 때도 동생이 함께 했으면 했지만 동생은 늘 그 자리에 없었다.
사실 나는 가끔 동생을 잊고 산다. 나 살기에도 바쁘고 힘들어서 동생을 잊고 산다. 하지만 부모님은 한시도 동생을 잊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진지를 드시다가도, 생일에도, 명절에도, 어느 날 문득 동생 이야기를 꺼내신다. 늘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져 있을 것이다. 제 손으로 낳고 기른 자식의 소식을 모른다는 건 어찌 설명할 길 없는 근심이자 고통일 것이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드릴 카네이션보다도 선물보다도 내가 드리고 싶었던 건 동생의 소식이다. 하지만 전해드릴 수 없었다.
동생 몫보다 내가 더 잘해드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어떤 존재의 상실감을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순 없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잘되면 잘될수록 동생 생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못해드린다거나 그렇다는 말도 아니다.
그저 어버이날이라고 해서 카네이션을 달아다니고, 선물을 하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우리가 평소에 너무 부모님 생각을 하지 않고, 효도를 하지 않고 살아가니까 어버이날만이라도 잘해드리고 자기 위한 삼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한 날이 특별하지 않도록 그렇게 지내고, 그러다 어버이날을 맞이하는 게 부모님을 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때로 외롭고, 거칠고, 험한 곳이지만 사실 행복하고, 기쁘고, 사랑스러운 날이 더 많다. 그런 날들을 누릴 수 있게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제는 동생과 함께 네 가족이 모든 걸 함께 겪으며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