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을 참 잘 찾는다. 처음 가본 길도 잘 찾고, 이미 가봤던 길이라면 몇 년이 흐른뒤 가도 잘 찾는다. 스스로가 기특할 정도다. 심지어는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해외에 가도 이 곳 저 곳 참 잘 찾아 다닌다.

내가 길을 찾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 길의 분위기와 주변의 지형들을 눈으로 익히는 것이다. 어떤 골목에는 이런 슈퍼가 있었고, 키 큰 나무가 있었고, 이 길에선 이런 분위기가 흘렀는데... 라는 느낌으로 길을 찾아 다닌다.

그래서 찾으려는 곳의 주변 한 두 곳이 바뀌어도 그리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다. 5년만에 갔던 파리에서도 기억에 의존해 길을 찾을 수 있었고, 변하지 않은 파리가 마치 고향처럼 반가웠었다.

여하튼 나 길 잘 찾는다고 자랑이나 하려고 글을 쓴 건 아니다. 그런 내가 길을 못 찾아 헤맨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어제 나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갈 계획이었다. 그래서 광화문역에 내려 교보문고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도저히 교보문고를 찾을 수 없었다. 지리학적으로 보면 분명 이쪽 통로인데 그곳에는 교보문고를 가는 길에 늘 있던 DVD를 파는 좌상도, 만물상을 파는 좌상도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광화문역 한 바퀴를 삥 돌다가 결국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교보문고가 없는 것이다. 그곳은 공사 현장으로 남아 있었다. 개·보수공사를 위해 휴점 중이란다. 참 허탈했다. 무언가를 빼앗긴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 앞 세대에게 종로서적에 얽힌 추억이 있었다면 우리들에게는 광화문 교보문고가 그런 존재이다. 그런데 개·보수공사로 이렇게 갑자기 모습을 감춰 버리다니...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지 모르지만... 새로운 교보문고의 모습은 마치 나를 배신하고 서울로 갔던 '순이'가 어울리지 않는 서울 아가씨 흉내를 내며 다시 나타났을 때의 모습을 보는 심정이지 않을까 싶은 우려가 든다.

우리 기억 속의 소중한 많은 것들이... 그렇게 완전히(조금이 아니라 완전히!) 바뀌어가는 모습들이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것들을 보는 심정은 쓸쓸하기만 하다.

서울역이... 청량리역이... 청평역이... 사람들이 좋아하던 오래된 극장들이... 그리고 이제 교보문고가... 그렇게 사라져간다. 기존의 모습이나 정서, 분위기를 모두 뺀 채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버린 그들은 변한 게 아니라 사라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모습들이 너무 슬프기만 하다. 5년이 아니라 단 5주만에 와도 기존의 분위기와는 확 바뀌어버린, 다른 향기와 냄새를 가지게 되는 서울이... 참 정 떨어진다. 이런 곳에서 나는 길치가 되어가는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10/07/30 11:41 2010/07/30 11:41

TRACKBACK :: http://playholic.net/trackback/341

◀ Prev 1  ... 57 58 59 60 61 62 63 64 65  ... 354  Next ▶
BLOG main image
플레이홀릭
플레이홀릭, 말 그대로 저는 노는 것에 중독돼 있습니다. 보다 행복하고, 즐겁게 노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할까요? http://twitter.com/Meinkampf
by 임지

카테고리

전체 (354)
어제 (119)
오늘 (77)
내일 (73)
그리고.. (66)
  • 865701
  • 234573
Tatter & Media textcube get rss
임지'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atter &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