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사귀던 남자친구와의 사이에 권태기가 찾아왔었다. 만나도 더이상 설레지 않고, 그 친구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도 없고, 때로는 귀찮았다. 그러다 "얘랑 헤어지고 나면,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주변에서 소개팅 해준다는 말에 솔깃했는지도 모르겠다. 원거리 연애이기도 했고, 게다가 권태기라고 하니 자꾸 소개팅을 권한 것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 안되겠네;; 물론 그런 말에 흔들린 내가 어리석은 거지만.)
어쩄든 그렇게 지내다가 오랜만에 만나는 주말, 종로였다. 영화를 보기로 했었던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원래 계획을 취소하고 근처 카페에 갔다. 나는 이 날 헤어지기로 마음 먹었던 건데, 그 친구는 이날따라 해맑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말을 꺼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이미 결정한 마음을 어찌하겠는가. 힘겹게 그만 만나자는 이야기를 꺼냈고, 결국 우리는 끝이 났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한참동안 괜찮은 남자를 못 만났다. 결국 그래봤자 '안 생겨요'가 된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서 헤어졌다라는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걸 말하고 싶다.
"날 힘들게 하는 사람, 이제 안 만나면 아프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간혹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생각 역시 내가 예전에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틀린 것이 아닐까 싶다.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고, 욕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그게 뜻대로 안 되거나 기대에 못 미치면 힘들고, 가슴 아프고 하는 것일게다. 그러니 이 사람과 헤어지면 아프지 않겠다라는 생각은 애초에 잘못된 전제이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로운 거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사람과 더이상 만나지 못한다면 그 아픔은 다른 색의 아픔으로 다가올 것이다.
결국 날 힘들게 하는 사람을 이제 안 만나도 나는 여전히 아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지금 힘들고, 아프더라도 그건 여전히 진행형인 것이고, 그 힘든 것도 잦아들 것이라는 희망이 남는 거지만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다면 그건 더이상 진행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람과 헤어지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라거나 "이 사람을 안 만나면 더는 힘들지 않겠지"라는 생각은 현실 도피일 뿐 그 어떤 해결책도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지나간 것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 혹시나 누군가 때문에 힘들다면, 더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직 사랑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