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B급 스타라고 이야기해서 미안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B급을 좋아한다. 뭔가 모자라다는 뜻의 B급이 아니라 대중적인 매력이 아닌 뚜렷한 자기 개성을 드러내 소수의 또는 매니아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의 B급이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B급 스타들이 A급 스타도 발돋움하길 바라지만 또 왠지 사람들에게 알리기 아까운 것도 사실이다. 왜 너무 좋은 것은 꽁꽁 숨겨놓고 나만 보고 싶은 그런 심리 말이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A급 스타가 될 수밖에 없는 B급 스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하정우

하정우는 이력상으로만 보면 어쩜 A급 스타일 지도 모른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도 전도연의 운전 기사로 나온 바 있다. 큰 키에 묵묵하게 자기 일 하는 캐릭터로 이 때도 팬들이 좀 생겼다. 그 전에도 '무인시대', '똑바로 살아라' 등에 출연했다.
드라마보다는 영화 이력이 화려한데, '잠복근무'에서는 나쁜 형사로 나왔었고, '용서받지 못한 자', '시간', '구미호 가족', '두번째 사랑', '숨' 등에 출연했다. 또 내년에도 하정우가 출연하는 영화 '추격자', '비스티 보이즈' 등이 개봉할 예정이다.
특히 포트투갈 최고 영화제인 오포르토 국제영화제에서 올해 남우주연상(영화 시간)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아마 하정우의 이름과 얼굴을 매치시키지는 못하더라도 하정우를 보면, "어,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라는 반응들을 보게 된다.
내가 하정우에게 푹~ 빠진 건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시간'을 보고 나서이다. 이 영화를 통해서 나는 그의 섹시함을 읽었다. 사실 그는 그렇게 잘생긴 얼굴은 아니다. 몸매도 사실 완전 근육질의 잘빠진 몸매는 아니다. 다만 매 순간순간마다 색다른 표정이 있고, 근육질은 아니지만 떡부러진 그냥 '남자의 몸'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투박한' 섹시함을 뿜어낸다.
특히 영화 '시간'에서 맡은 '지우'라는 역할에선 평범한 남자의 모습을 잘 그려낸다. 아마 하정우였기 때문에 평범한 남자를 그리도 자연스럽게 그려낸 듯 싶다.
아무튼 이 영화를 통해 반한 뒤 하정우가 나온 작품들을 찾아다녔다. 하정우가 눈길을 끈 건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영화를 통해서다. 이 영화 역시 하정우만이 해낼 수 있는 평범한 예비역 남성의 역을 잘보여줬다.
김진아 감독의 '두번째 사랑'은 베라 파미가와 함께 외국에서 제작, 촬영된 영화인 데, 이 작품 역시 하정우의 '섹시함'이 극렬하게 드러난다. 아마도 남자 감독들은 하정우의 매력을 끌어내는 데, 부족함이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김진아라는 여자 감독은 하정우의 섹시함을 모든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겠다. 실제 '시간'을 보고나서는 하정우가 섹시하다는 내 의견을 이해못하던 친구가 '두번째 사랑'을 보고난 뒤에는 그가 섹시하다는 것을 강하게 인정했다.

아무튼 그가 섹시하다고만 얘기했지만, 사실 배우들이 잘하지 못하는 연기가 평범한 사람을 평범하게 연기하지 못하고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하정우는 평범한 캐릭터를 평범하게 연기함으로써 매력을 발휘한다.
또 작품을 선택하는 그의 안목 역시 남다르다. 독립영화인 '용서받지 못한 자'에 떡하니 출연하질 않나, 많은 안티팬을 몰고 다니는 김기덕 영화(물론 나는 김기덕을 좋아한다. 그래서 김기덕 영화에 출연한 하정우가 고맙다)엔 두번이나 출연했다.
또 외국 배우와 영어로 대사를 해야하는 영화에도 선뜻 출연했고, 그보다 많은 이미지 변신을 요하는 '구미호 가족'에까지 출연한 걸 보면 이 배우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구나 싶다.
한 가지 이미지에 의존하지 않고, 도전하기에 멋있는 배우이고, 그렇기에 A급 스타가 될 수밖에 없는 배우인 듯 하다.
2. 박희순

1990년부터 2001년까지 극단 목화에서 연기를 했으니 10년 넘은 연기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일단 연극계에 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사람들은 높이 산다. 그 이유는 연극계는 여전히 먹고 살기 힘든 곳이고 연극을 계속한다는 것은 그만큼 연극을 좋아하고 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또 아무래도 연극의 매력은 관객과 호흡한다는 것인데, 그걸 좋아하는 배우라면 사람을 좋아하는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기도 하다. 뭐 어떠랴. 좋은 선입견인데..
박희순은 '귀여워', '가족', '보스 상륙 작전' , '쓰리' 등에 출연했다. 또 최근 개봉작인 '세븐데이즈'에도 출연했다고는 하나 아직 못봤다. 지금은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에 출연 중이다. 이력을 보면 알겠지만 박희순은 주로 건달, 조폭 이런 역할 등을 맡아왔다. '세븐 데이즈'에서는 형사라고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새로운 연기로 사람들에게 각인받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 할지라도 한가지 역할로만 사람들에게 다가가면, 이 배우가 어디에 나왔던 배우인 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요새 포스팅들을 보면 '세븐 데이즈'의 박희순 연기가 멋있었다라는 글들이 꽤 있다. 아마도 새로운 이미지 변신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각인된 효과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세븐 데이즈'는 아직 못봤으니 '얼렁뚱땅 흥신소' 얘기를 하겠다. 박희순은 물론 여기서도 조직의 보스로 나온다. 그러나 드라마 자체가 특이해서인지, 박희순 역시 특이한 보스이다. 뭔가 많은 비밀을 간직한, 때로는 잔인하지만, 한편으로는 순애보도 가지고 있는.. 대사도 별로 없고, 등장하는 장면도 그리 많지는 않지만 박희순은 등장 만으로도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물론 드라마에서도 박희순이 나올 때마다 배경음악 등을 깔아주며 효과를 내긴 한다. 그래도 그 음악과 분위기를 그대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3. 예지원

사실 난 예지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예전에 '꼭지'라는 드라마에 나왔었는 데, 예쁘지도 않고 여배우가 너무 촌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사실 예쁜 사람에게 끌리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그런데 그 생각은 영화 한 편을 통해 바뀌고 말았다. 바로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이라는 영화를 통해서다. 두 남자 앞에서 천역던스럽게 춤을 추는 '명숙', "우리 어색한 데 뽀뽀나 할까요?"라고 얘기하는 '명숙'의 역을 꼭 예지원 본인인 양 보여줬던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서 아 이 배우, 예쁜 배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에선 대통령에 도전하는 창녀 역할을, '귀여워'에서는 영화를 전반적으로 이끌고 갔다. 조금 모자란 듯 하면서도 섹시하고, 정신나간 듯 하면서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그런 '순이' 역할이 인상 깊었다.
이 후 '올드 미스 다이어리'는 너무 많은 인기를 끌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다만 사정없이 망가지는 노처녀 역할을 잘해내면서도 다른 캐릭터들 사이에서 너무 튀지 않는 딱 제 역할만큼을 잘해냈다는 생각이다.

희경은 타로마스터라고는 하지만 상대가 흘린 말로 상황을 추려내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한마디로 사기꾼 타로마스터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도 천연덕스럽게 상대를 속여 넘기고, 눈이 뒤집히는 연기까지 막힘없이 해낸다. 엉뚱한 데다 착각도 심한 희경역은 어쩌면 예지원이라는 사람이 저 사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예지원 역시 지금까지의 캐릭터가 한없이 망가지는 역할이었다. 그럼에도 예쁘다, 아름답다, 귀엽다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건, 그녀가 솔직하게 연기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다른 여배우들과는 달리 예뻐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철저히 망가지는 연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 그것이 다른 여배우들과 차별되는 점이고, A급 스타가 될 수밖에 없는 매력이 아닌가 싶다.
여기까지가 내가 생각하는 A급 스타가 될 수밖에 없는 B급 스타들이다. 물론 이 사람들이 어떻게 B급 스타야라고 얘기할 지도 모르겠다. 이미 훌륭한 연기들을 보여준 스타들이므로. 다만 앞에서 언급한 데로, 이들이 제 개성들을 유지해 가면서 대중들의 인기도 얻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정리해봤다.
이들을 자주 봤으면 좋겠다~.
2007/11/24 00:08
2007/11/24 0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