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가 사라져가고 있다. 예전보다 많이 없어졌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공중전화를 찾을 일이 없으니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12월 15-16일 조선일보 土日섹션에는 "공중전화의 몰락... 그 많은 적자는 누가 메울까"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공중전화는 20여만 대. 2001년 49만9500대에 이르렀던 공중전화는 6년 새 절반 이상 사라졌다."고 한다.
적자 문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하고 싶은 얘기는 다만, 사라져가는 공중전화에 대한 추억 뿐이니까.
휴대폰이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았고, 삐삐도 갖지 못했던 중고등학교 때의 유일한 낭만은 공중전화였다. 짝사랑하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고, 무수히 끊었던 것도 공중전화였고, 용기 내 통화를 했던 곳도 공중전화였다. 쉬는 시간, 수많은 여학생들이(여중이었으므로) 줄 서 있던 곳도 공중전화가 있는 곳이었다. 그 짤막한 시간을 이용해 삐삐도 치고, 통화도 했던..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가진 공중전화에 대한 추억은 '짝사랑'이다. 그땐 집으로 밖에 전화를 할 수 없었으니 짝사랑 상대의 목소리라도 한 번 듣기 위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면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고(죄송합니다. 그땐 어려서 그랬습니다. ㅜ.ㅜ), 어쩌다 그 상대가 전화를 받아도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끊기 일쑤였다. 그건 공중전화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전화를 걸 수만 있었던 곳이니까...
영화 '접속' 중
나는 특히 문달린 공중전화박스를 좋아했는데, 그건 왠지 비밀스럽고, 잠깐이라도 나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땐 휴대폰이 없어서 전화를 자주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공중전화를 이용할 때는 항상 설레는 일, 기쁜 일만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공중전화에 대한 기억이 더 좋게 남는 것일 지도..
휴대폰이 보급되고, 발신번호가 표시된 뒤로도 공중전화는 때때로 이용됐다. 발신번호를 남기지 않고, 전화를 할 수 있는 수단이 공중전화 뿐이었으니까..(지금은 발신번호 표시를 하지 않고도 전화를 할 수 있게 됐지만..) 실제로 난 대학교 1학년 때까지 공중전화가 보이면, 가던 길을 멈추고 전화를 하곤 했다. 물론 통화는 하지 않았지만..
그런데 그랬던 공중전화가 사라진다고 하니,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건 추억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무 많은 것들이 편리함에 뒤쳐져 버려지는 현실이 슬프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휴대폰 없으면 대체 어떻게 살까라는 얘기들을 자주 하지만, 그저 버튼을 누르는 것 만으로 어떤 상대에게 바로 연결돼 버리는 건 때때로 너무 매력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너무 쉽게 만나면 감동이 없는 것처럼, 정말 연락하고 싶었던 사람과 너무 쉽게 연락이 돼버리는 것도 감동을 반감시키는 건 마찬가지다.
거의 10년만에 한 사람에게 전화를 했는데, 너무 쉽게 그 사람이 전화를 받아버리니 조금 허탈했다. 오랜만의 만남인데,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라는 '편리함에 대한 배신감'이랄까.
얼마 전 killdogma님이 쓰셨던 사랑의 공중전화 박스도 공중전화 만이 가진 공간적 매력을 잘 활용한 예가 아닌가 싶다. 공중전화박스는 사람들의 많은 추억들이 깃든, 사랑을 고백하기에 알맞은 장소니까...
혹시 여러분이 간직한 공중전화 박스 속 추억은 무엇인가? 공중전화가 모두 사라지기 전, 추억만이라도 남겨두고 싶다.
박민영 (문화평론가) 옛 추억 하나. 벌써 15년 정도 지난 일이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학교 후배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서울에 살았고, 나는 수원에 살았다. 우리는 주말에 서울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출발이 늦었다. 허둥지둥 대면서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는데, 아뿔싸 잘못타고 말았다. 강남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파주쪽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당시만 해도 내가 서울 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