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때, 과 연극학회에 들어가 연극을 한 적이 있다. 3월에 입학해 4월 워크샵 공연을 올렸으니 한달 간 정말 '빡세게' 연극 연습을 했다.
수업 끝나자마자(때로는 땡땡이까지 치면서) 모여 운동장 돌고, 스트레칭 하고, 발성연습에 대본 연습, 연기 연습까지... 뻣뻣함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나였기에 고강도 스트레칭은 그야말로 곤혹이었다.
그래도 땀 흘리며, 여러 사람들과 뭔가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 재미있고, 뿌듯해 힘든 지도 모르고 몰입했다. 남자친구도 뿌리치고, 술도 뿌리치고, 뭔가 하나에 몰입했던 건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무수한 연습 끝에 3일간의 공연을 했고, 매일 공연을 마친 뒤 뒷풀이를 했는데 그 중심에는 항상 배우와 연출자가 있었다. 그땐 나도 배우였기에 그 중심에 있었고, 내가 주인공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느꼈다.
가을 정기공연 시즌이 왔을 때, 나는 학보사 기자를 하고 있었기에 연극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어떤 형태로든 연극에 참여하고 싶어 소품 스텝으로 참여했었다.
드디어 정기 공연이 무대에 올랐고, 막을 내렸고, 또 뒷풀이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 뒷풀이의 중심은 여전히 배우와 연출자에게 있었다. 그때서야 난 배우와 연출자만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과 스텝들이 느끼는 소외감 등을 생각하게 됐다. 그 서운함을 표현하자 내가 배우일 때 스텝을 했던 친구가 자신도 똑같은 걸 느꼈노라고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결국 나도 내가 스텝이 돼보기 전에는 배우와 연출자 만으로 연극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스텝이 되고 보니, 이를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상했고, 지난 날의 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참 자기중심적으로 사고를 한다. 나도 그랬고, 다른 사람들 역시 내 자신이 중요하고, 내가 하는 일만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사실 내가 하는 일을 중요하다고 느끼고, 그 일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다. 도덕시간 때도 배우지 않았나.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다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내 삶, 내 일의 주인공이듯 다른 사람 역시 그들의 삶, 그들의 일에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그걸 늘 생각하면서 사람들을 배려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경청하고, 양보하고, 조정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도 쉽게 나만이 주인공이라는 착각에 빠져버린다.
너희는 나를 보조하기 위한 존재들이잖아. 내가 중심이니 내가 잘되게끔 보조해줘야해라는 인식들이 모여 집단 이기주의를 만든다.
얼렁뚱땅 흥신소의 한 장면
얼마 전 종영한 KBS 2TV의 '얼렁뚱땅 흥신소'를 보고 감동을 받은 부분이 있는 데, 매회 마다 번외편을 통해 조연들의 삶을 조명한 부분이 그것이다.
그 중 한편에 이런 내용들이 나온다. 매 회마다 잠깐씩 나왔던 조연들을 모두 보여준 뒤 "그들을 억지로 기억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 삶의 주인공이라서 이 이야기에 참견하기에는 너무 바쁠 뿐입니다."라는 자막이 나온다.
비록 그들이 내 인생, 내 일에 있어선 조연일 지라도, 그들은 모두 그들 인생의 주인공 역할을 하느라 바쁘다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그러니 기억하진 못할 지라도, 알아둬야 하진 않을까?
모두가 제 인생에서는 자신이 주인공이고, 내 인생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라 할 지라도 그들 인생에서 난 조연일 수도 있다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