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기자였다. 기자가 되면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에 나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기자가 됐다. 그리고 내가 속했던 매체의 특성상 소외된 사람들, 상대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그나마 전달할 수 있는 기자가 됐다.
기자가 된 후, 난 기자가 되기 전 갖고 있었던 언론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개념을 과감히 버렸다. 언론은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것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기계적인 객관성과 공정성은 결코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조종사노조가 파업을 했다. 거의 99%의 언론들이 귀족노조의 배부른 파업이라고 뭇매를 때렸다. 파업의 쟁점은 '돈'이 아니었음에도 조종사들의 억 단위 연봉이 문제가 됐다. 언론에서 쟁점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않으니 많은 사람들이 조종사들이 억 단위 연봉을 받으면서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파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함께 돌을 던졌다.
그 때 나는 어떤 기사를 써야 했을까? 그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99%의 언론에 대해 비판하면서 나 혼자서라도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해야 했을까?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철저히 조종사노조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객관성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적시하는 선에서 유지했고, 99%의 언론들이 조종사노조에 돌을 던졌기에 나는 항공사에 돌을 던지는 기사들을 썼다.
흔히 말하는 주류 세력, 집권 세력에 대한 찬양들만이 넘칠 땐 굳이 기계적으로 그들의 입장과 그에 반하는 세력들의 입장을 맞춰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0개의 기사 중 9개가 한 사람, 또는 한 단체에 뭇매질을 한다면 1개의 언론은 그들을 칭찬해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 중 하나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기사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기본적인 여건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기본적으로 되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라고 한다면, 나는 소외된 자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로 인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로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듯 하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 촛불집회가 그렇다. 그동안 언론들이 감춰왔던 것, 축소했던 것, 왜곡해 보도했던 것들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로 직접 전달됐다.
조금 부족한 글 솜씨일지라도, 조금 부족한 사진일지라도 진실이 묻어 있는 그 시민들의 뉴스들은 모두 소중하다. 굳이 기자가 말하지 않아도, 더 생생히 진실을 전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다른 이들의 행동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민들에게 촛불을 들게 하고, 직접 말하게 만든 장본인은 따로 있지만, 오늘날 이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촛불을 든, 카메라를 든, 펜을 든 시민들이다. 그 외 누구도 대표적인 영웅이 될 순 없다. 영웅으로 나서기, 영웅 만들기보단 스스로가 주인공임을 깨달아야 한다.
촛불집회의 주인공은 시작부터 끝까지 시민들이다. 그 한명 한명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앞당겨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더이상 기자라는 이름이 부럽지 않다. 그보단 진실을 전하는 또 한명의 시민이 되길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