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엔 가슴 시린 역사의 현장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곳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곳에 그것이 있었는 지도 모르게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곳.

바로 서대문형무소(지금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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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서대문형무소에 발걸음을 했을 때...

나는 솔직히 무서웠다.

서늘한 기운에, 온 몸 구석구석에 공포심이 스며들었다고나 할까?

아마도 많은 원혼들이 그곳을 떠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고문을 당해가며, 죽어갔다.

그러니 어찌 그곳이 무섭지 않을 수 있었을까?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가운데 예전에 감옥으로 쓰였던 옥사로 들어섰을 때는...

소름 끼치도록 서늘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왔다.

말로 못하게 좁은 공간.

사방이 꽉 막히고, 서늘한 그곳은...

잠깐 들어가보기에도 무시무시한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고문실...

지금은 당시 고문의 현장을 마네킹으로 재현해놓았는데...

그 역시 소름끼치는 현장이었다.

만약 내가 이곳에 갇혀, 저 고문을 받았더라면...

난 아마도 금새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내가 한 모든 일을 뒤엎어버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문이라는 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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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사형장에 들어서기 전이었다.

그 앞에는 미루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이 나무의 이름이 ‘통곡의 나무’라고 한다.

사형수들이 사형장으로 들어가기 전 이 나무를 붙들고 잠시 잠깐이나마 통곡을 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얼마나 서롭고, 원통했을까?

서러움을 한가득 먹고 자라서인지 ‘통곡의 나무’는 삐적 마른채 키만 무럭무럭 자랐다.

사형장은...

오래된 목조 건물이라 안전상의 문제로 인해 직접 들어갈 순 없었다.

그러나 사형장의 구조만으로도...

사형수들이 어떻게 죽어갔는 지는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다.

바닥 아래로 떨어질 때의 심정은 또 얼마나 원통했을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산다.

우리 옆에 있는 것도 보지 못하고,

얼마되지도 않은 일도 금새 잊어버리고, 똑같은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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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도 제대로 된 친일청산조차 하지 못했으며,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 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하고, 나를 죽여 국가를 받들겠다)”이라는 혈서까지 썼던

일본군 소대장 출신 다카키 마시오(박정희)는 떳떳이 한 나라의 국권을 잡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영웅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다카키 마시오의 정신을 따라 정치 활동을 벌이는 사람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를 나서며...

이 시대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과 오늘의 또다른 다카키 마시오가 공존하고 있음에 분노와 슬픔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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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5 20:04 2007/06/0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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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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